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두 번째 퇴사통보

수트레스 2021. 4. 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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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전, 가을. 나는 더이상 이 곳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속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결국 그만두지 못하고 1년 반을 더 여기에 머물렀다. 합리화를 위한 여러가지 핑계들 중 나를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가난해지는 것이었다. 돈없이는 좋은 딸이, 독립적인 여자친구가, 멋진 이모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퇴사를 번복할 만큼 심각한 공포였다.

그렇게 퇴사를 포기한 후 1년 6개월동안, 나의 머릿속에서는 퇴사라는 두글자가 단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수입이 나올 구멍을 만든 후에 안정적인 퇴사를 하는 것을 목표로 나는 퇴근 후에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는 특수한 직군에 있으면서, 수입이 나올 구멍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야근과 주말근무는 안그래도 부족한 시간과 체력을 빼앗았다. 게다가 가장 큰 장애물인 영리활동 금지 조항 때문에 그 무엇도 마음 놓고 시작할 수 없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야속하게도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늘어만 가는데, 공무원으로 살아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오랜시간 간직해 온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글을 썼지만, 매번 보기 좋게 떨어졌고 나는 이 싸움이 장기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캄캄한 터널 안에서 달린다고 달렸는데 빛은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새벽, 출근 알람이 울리면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할지 설레며 아침을 맞고 싶었다.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천 년 만 년을 살아도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즐거운 마음으로 지속할 수 있는 또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은 전략이지만 모태산만함을 가진 나에게는 맞지 않다.

노트를 펴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필터없이 써내려가다보니 순식간에 10가지가 넘어갔다. 출판번역가, 드라마 작가, DIY가구 제작, 전자책 출간, 이모티콘 작가, 주식투자자, 작사가, 명상음악 작곡, 그림책 작가, 디저트 가게 사장, 보드게임 제작자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생길지 기대된다. 우리 엄마는 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지만, 나는 내가 무엇에 도전하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100번의 도전을 하면 그래도 한 번은 성공하지 않을까?

그 일들을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두 번째 퇴사 통보를 했다. 오늘은 무척 평범한 하루였지만, 분명 1년 뒤의 나는 오늘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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