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딸의 퇴사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

수트레스 2021. 4. 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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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무원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엄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딸이 공무원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이상 딸이 골방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느끼는 기쁨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나의 자유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은 지금의 내 상태보다 그만둔 뒤의 내 상태를 더 걱정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퇴사소식을 들었을 때, 그만두고 "뭘 할 건지"가 아니라 "뭘 해서 먹고 살 건지"를 궁금해했다. 결국 먹고 살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고 가족들은 크게 안도했다.

두 번째로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는 부모님 앞에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말대신 몸으로 격렬하게 퇴사를 외쳤다. 잔뜩 찌푸린 얼굴, 뚝 떨어진 입맛, 깊어지는 한숨, 자꾸만 아파오는 몸 여기저기. 엄마는 결국 내가 원하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만두고 엄마랑 주식투자 할까? 그리고 10년만 있다가 같이 시골에 가서 살자. 가서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써."

나는 그 즉시 "엄마, 사랑해."를 외치며 엄마의 빈말을 덥석 낚아챘다. 엄마는 아뿔싸, 했지만 설마설마하며 그 날의 일을 조용히 묻으려했다.

아빠는 언제나 한술 더 뜬다. 노후에는 나만 믿는다는 진담같은 농담을 입에 달고 살고, 자식이 주는 용돈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몸쓰는 일을 하는 아빠는 60대 중반을 지나며 부쩍 일을 버거워한다. 쉬는 날에는 딸을 회사에 태워주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아빠에게 나의 퇴사는 꽤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왜 그만두고 싶은데?"
"나는 일하는 걸 진짜 좋아하는데, 이 일은 하기 싫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다들 일하기 싫다고 말할 줄 알았던 아빠는 의외의 반응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럼 그만 둬야지. 하기 싫은데 별 수 있나."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적 없는 아빠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남의 감정을 헤아릴 줄 몰라, 평생을 가족들에게 타박당하며 살아온 아빠가 그 순간만큼은 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빠 또한 그 날의 일을 잊은 듯하다.

어제 이미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지만, 부모님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직 그만두기로 한 날이 두 달 넘게 남아있었고, 그동안만이라도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걱정을 안하는 대신, 아빠는 오늘도 저녁밥을 먹는 나에게 대뜸 자신의 노후를 부탁했다.

부모님이 내가 하루빨리 세상물정을 깨닫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를 염원하는만큼, 나도 엄마 아빠가 했던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 나를 먹여살리고도 능력이 남아돌아서 엄마 아빠까지 책임질만큼 큰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까지 노후를 책임지라는 아빠의 말에 "내가 왜!"라며 발끈했던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딱 5년 뒤에는 나만 믿으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기를.

그 때,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도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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