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4
공무원이 된 후 1년에 한 번은 공무원시험에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늘은 2021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이 있는 날이었고, 내 생에 마지막으로 공무원 시험에 감독으로 참여할 기회일 것 같아 감독으로 자원했다.
수험생의 신분으로 시험장에 갔을 때는 시험감독관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이 되면 꼭 감독관을 해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기분을 꼭 느껴보고 싶었으니까.
시험감독관의 신분으로 시험장에 가면, 일단 긴장이 덜 하다. 하지만 내 실수로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를 망쳐버리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린다. 감독관은 정확한 시간에 타종을 하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정확하게 배부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험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히 행동하는 것이다.
오늘은 수험생들을 보며, 유독 옛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고, 지금의 그들처럼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그들은 눈앞에 있는 시험감독관이 퇴사를 앞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했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애썼던 지난 날의 나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때때로 다른 노력은 해보지도 않고, 남들이 하는대로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으로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들을 선물해주었고,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주었고, 뒷일을 도모할 만큼의 안정된 자산도 마련해주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모든 선택에는 아쉬움과 감사함이 공존했기에 결국 틀린 선택은 없었다.
열심히 시험문제를 푸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인생은 각자의 빛을 낼 것이고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주말 아침, 달콤한 늦잠을 포기하고 받은 수당 6만원으로 맛있는 걸 잔뜩 사먹었다. 오늘 시험본 수험생들 모두 맛있는 거 잔뜩 먹고 힘냈으면 좋겠다. 합격이 기대되는 사람도, 다음 시험을 기약하는 사람도 모두 많은 힘이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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