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81

[공무원 퇴사일기] 백수 1일 차, 마지막 일기

D-day 백수 1일 차. 퇴사 일기의 마지막 이야기다. 아직은 아무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 푹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하는 꿈을 꾸다 7시에 눈을 떴다. 출근하기 싫어 몸부림치던 아침은 이미 잊어버리고,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억지로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9시쯤 일어나 명상과 요가로 상큼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간단히 고구마로 아침을 때우고, 어제 못 본 성시경의 영상들을 보며 이루고 싶은 일 100번 쓰기를 했다. 50번밖에 쓰지 못했는데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백수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짜파게티를 끓여 엄마 아빠와 둘러앉아 먹었다. 앞으로 나의 점심은 이렇게 소박하지만 편안하겠구나. 그 순간 또 한 번 내가 백수라는 게 실감 났다. ..

퇴사일기 2021.07.02

[공무원 퇴사일기] 이 곳에서 빛났던 순간에 감사하며

D-1 이런 날이 진짜 올 줄은 몰랐다. 매일 같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같은 역에 내리고, 한 발짝도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서 회사에 도착하는 익숙해진 나의 삶이 완벽하게 바뀌는 순간. 이 순간이 오면, 그저 홀가분하게 훨훨 날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발걸음은 선택의 여지없이 무거웠다. 아빠는 마지막 서비스라며 출근하는 나를 태워 회사까지 차를 몰았다. 나를 회사에 데려다주는 것, 나의 퇴근길 메이트인 자전거를 지하철역에 가져다 두는 것을 즐거운 소일거리로 여기던 우리 아빠는 이제 즐거운 일 하나를 잃은 셈이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씩씩하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때마침 도착한 엄마의 카톡 메시지를 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다니기 싫은 직장 다닌다고 힘든 우..

퇴사일기 2021.07.02

[공무원 퇴사일기] 마지막 인사

D-2 오늘 하루동안 너무 많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라는 인사와 꼭 성공하라는 응원들은 눈물날 만큼 고마웠지만,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내가 뱉어놓은 많은 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우리는 여전히 나중을 기약하지만, 나는 아마 그들의 기억속에서 조금씩 멀어지다 잊혀질 것이다. 퇴사라는 선택 속에 잊혀짐도 포함되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비록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더라도, 나는 최대한 오랫동안 이곳을 추억하고 싶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자리에 돌아오니, 계장님이 복무가 엉망진창이라며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다. 이 농담을 듣는 것도 내일이 마지막이라니, 참 오래 그리울 것 같다. 마치고 계원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웃느라..

퇴사일기 2021.07.01

[공무원 퇴사일기] 딸의 퇴사를 축하합니다

D-(1+2) 그만두고 뭐할 거냐는 질문 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은 나의 퇴사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퇴사 결정을 하면서 부모님의 실망이 가장 큰 걱정거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성인이 된 후로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부모님은 어김없이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었고,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어떤 결정을 할 때 부모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의 무게 때문에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돌아보면 내가 적성에도 안 맞고 흥미도 없었던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번듯한 직장을 가져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려야겠다..

퇴사일기 2021.06.29

[공무원 퇴사일기] 예비백수의 미래계획

D-(2+2) 직장인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휴일이다. 요즘 아무튼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실제로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봐서인지 보는 내내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다. 직업만족도 100퍼센트인 직업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며칠 후면 나의 선택에 따라 매일이 휴일이 될 수도 매일이 근무일이 될 수도 있다. 해이해지기 쉬운 백수생활에서 나를 다잡아줄 좋은 프로그램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다. 출근할 직장은 없지만 아무튼 마음만은 출근해볼 생각이다. 2021년을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들을 돌아보니 상반기 내에 모두 이뤘다. 공모전 10작품 이상 응모, 1억 만들기, 퇴사, 건강 챙기기까지. 물론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면 완벽했겠지만 그건 아주 깔끔하게 실패하는 바람에 오히..

퇴사일기 2021.06.28

[공무원 퇴사일기] 소중한 1%의 인싸력

D-(3+2) 공무원으로 살아온 5년 4개월의 시간 동안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컸다. 이곳에서 나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준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내 안에 갇혀있던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의 표본이었던 나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를 사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그래서 학년이 바뀌는 3월이 나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주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20살이 되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데 서툴렀다. 오죽하..

퇴사일기 2021.06.27

[공무원 퇴사일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D-4+2 바로 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7월 정기인사가 있었다. 나의 후임자가 오느냐 마느냐가 걸린 중요한 인사였는데, 다행히 후임자가 공백 없이 내 업무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절망한다. 내가 그만두는 바람에 7급 자리 하나가 비었고, 그 빈자리 덕분에 한 사람이 예정보다 빠르게 진급을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퇴사가 누군가를 기쁘게 한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인사는 정기인사와 수시인사로 나뉜다. 정기인사는 1년에 2번, 1월과 7월에 있고 수시인사는 말 그대로 수시로 있다. 휴직과 퇴직은 정기인사나 신규발령이 있을 때 맞춰서 하지 않으면 후임자를 받기 어렵다. 후임자가 오게 됐으니 7월 인사 ..

퇴사일기 2021.06.26

[공무원 퇴사일기] 퇴사답례품을 고민하고 있다면

D-5+2 오늘로 나의 의원면직이 결정되었다. 이제 무를 수도 없이 진짜 퇴직자가 되어버렸다. 가까웠던 동료들과 밥 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작별인사도 얼추 끝냈다. 참 기나긴 여정이었다. 마지막 근무일을 기다리고 기다렸었는데,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정말 내 이야기 맞는 건가? 아름다운 퇴사를 하게 된 기념으로 고마웠던 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은 퇴사를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마지막 감사선물을 뭘로 해야 할지 가장 많이 고민해왔다. 고마웠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아보니 50명이 넘었다. 곧 백수가 될 몸이니 너무 비싼 것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너무 싼 것을 하자니 내 마음을 표현하기 부족할 것 같았다. 나와의 지독한 싸움 끝에 인당 3천 원~4천 ..

퇴사일기 2021.06.25

[공무원 퇴사일기] 내가 원하는 모습과 남들이 보는 모습 사이의 간극

D-6+2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내가 원하는 나의 첫인상은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인데,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첫인상은 차갑고 당돌한 사람이란다. 어린 날에는 말없이 웃고 있기만 해도 착하고 순수한 아이 취급을 받을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이미지 관리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직언을 참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편안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보이길 바란 것부터가 잘못인 걸까. 알고 보니 나는 내가 꽤나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직원들 중 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없거니와 들려오는 나쁜 소문들도 일절 없기에 정말이지 나에게는 적이 아무도 없는 줄만 알았다. 그러다 바로 오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충격적인 ..

퇴사일기 2021.06.25

[공무원 퇴사일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D-7+2 작년 이맘때쯤 나는 멋진 선배님 한 분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그는 나에게 7급 같은 9급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따뜻한 선배였고, 나의 첫 퇴사 소동 때 누구보다 나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준 사람이었다. 그분이 계장이 되기 얼마 전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나는 입사 후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서툰 신규였고, 그분은 구청 내에서 손꼽히는 엘리트였다. 내가 답답할 법도 했을 텐데 그는 한 번도 나를 혼내는 법이 없었고, 나는 그의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먹고 쑥쑥 자랐다. 6개월 뒤 선배는 계장이 되어 떠났지만, 몸은 멀리 있어도 여전히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내가 진짜 7급이 되었을 때 같은 부서에서 계장님을 다시 만났다. 언제나처럼 계장님은 부서의 분위기..

퇴사일기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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