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0
공무원들은 1년에 2번, 근무성적평정이라는 것을 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공정한 인사관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공무원 개개인의 직무수행 능력과 태도 및 실적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일을 말한다. 이 근무성적평정에서 받는 성적을 순서로 승진을 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 순위매기기는 아직까지는 연공서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어떤 조직이든 뛰어난 사람은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고 뛰어나게 잘하거나 큰일을 맡아 잘 해낸 사람은 몇 계단을 뛰어넘어 승진을 하기도 한다. 드문 일이지만.
대부분은 평범하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뛰어나지 않아도 큰 사고를 치지 않으면, 시간이 승진을 시켜준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많은 부분에서 단점으로 느껴진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승진이 되는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으니까. 가끔은 사기업이었다면 열 번도 잘리고 말았을 사람들이 계장, 과장이 되는 못볼 꼴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참 일할 맛이 안 난다.
오늘, 2021년 상반기 근무성적평정서를 만들었다. 나의 마지막 근평. 나도 만만치 않은 꼰대 마인드를 갖고 있는 터라, 내가 동기들 중에 나이가 많은 편이니 동기들보단 높은 순위에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의미없는 일인데 말이다.
아직 우리부서에서 계장님 말고는 나의 퇴사계획을 아무도 모른다. 운 좋게도 대체로 근평을 잘 받는 과에서 일하고 있고, 얼마 전 큰 업무 하나를 끝낸 탓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동기들보다 높은 순위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다. 곧 퇴사할 사람에게 앞자리를 뺏기는 건 아무래도 유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꼴찌를 자원해야할까. 그러자니, 높은 순위를 줄 생각도 없는데 건방지게 꼴찌를 달라고 하는 웃긴 꼴이 될 것 같았다. 뭐,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마지막이니까 좋은 순위를 받고 떠나고 싶은 마음과, 마지막이니까 좋은 순위를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나는 아마도 침묵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근무성적평정서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좀 우습지만 그래도 그게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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