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8
한국의 공무원들은 지독한 우울감에 빠져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공무원들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요즘은 특히나 공무원들의 자살 소식이 자꾸 들려와 마음이 무겁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이 곳을 그만두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당장 내 옆의 동료들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호소하면서도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래서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버틴다. 공무원들은 대부분 먹고 살 만한 기술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국어 영어 한국사 공부만 하다 공무원이 됐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공무원이 되면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게 불행한 게 아닌가? 이건 아무것도 모르고 국어 영어 한국사를 공부한 공시생들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란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업무환경이 어떤지 따위는 찾아보지도 않고, 합격방법만 찾아봤던 내 잘못이 크다.
"공무원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요."
"같은 돈 받으면서 누구는 뼈빠지게 일하고, 누구는 논다."
"요새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
"먹고 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오늘 하루 내가 동료들에게 들은 말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퇴사를 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코로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하는 노력만큼 퇴사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너무 우울해서 그 노력을 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공무원블루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국가의 손이 필요한 일들이 늘어나면서 업무는 더욱 다양해지고, 더 높은 수준의 업무능력을 요구한다. 그 말은 즉슨, 욕 먹을 일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든 욕을 먹고 우울하지 않을 강철멘탈은 드물다.
어디 공무원만 그럴까? 이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들은 월요병이라는 말로 우울감을 승화시키고, 주말이라는 달콤한 보상으로 일주일을 버틴다. 버티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공무원도 못 버티면 나가서 아무것도 못한다."
공무원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나 할 만한 꼰대 of 꼰대 멘트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공무원을 그만두려는 사람들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티고 말고는 남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너무 열심히 버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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