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지방직공무원의 별별 차출

수트레스 2021. 4. 2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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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직공무원들은 고유의 업무를 하는 것 외에도 아주 다양한 일에 동원된다. 우리는 그것을 차출된다고 말한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도 10가지는 족히 넘는다.

그 중 가장 난도가 높은 업무는, 단연 축제 주차요원과 투표소 근무라고 말할 수 있다.

축제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날은 온종일 일곱 살 난 아이와도 같은 사람들과 씨름을 해야한다. 주차장이 꽉 찼다는데도 막무가내로 차를 들이미는 사람들, 출구로 나가면 집에 가는 길과 반대방향이라며 입구쪽으로 역주행하는 사람들, 자주 고함소리가 오가고 때때로 욕설이 난무하는 혼돈의 카오스...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왜 기분 좋게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날 흙먼지만 잔뜩 마시며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오가는 정다운 고성에 정신이 나갔는지, 주차요원이 아니라 그저 관람객으로서 축제를 즐길 수 있다면 차쯤은 머리에 이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가히 차출의 최고봉이라 불릴 만한 투표소 근무는 근무시간부터 압도적이다. 새벽 5시에 출근하여 오후 7시~9시에 마치니 총 근무시간은 12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새벽 5시에 배정받은 투표소에 도착해야하기 때문에 차가 없는 직원들은 비싼 택시요금을 치르거나, 주변 모텔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나 또한 뚜벅이인지라, 동료의 집에서 신세를 지거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새벽 6시에 누가 투표를 하러 오나,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그 새벽에 줄까지 선다. 그러니 새벽에 오지 않을 재간이 없다.
투표소 근무는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단순노동이다. 투표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서명을 받고, 투표용지를 나누어주는 일의 반복. 사람이 많이 오는 투표소는 정신이 없고, 사람이 오지 않는 투표소는 시간이 안 간다. 둘 다 다른 형태의 지옥을 맛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청사 입구 발열체크, 환경정비, 식목일 기념 나무심기, 각종 당직과 비상근무, 공무원 및 국가자격증 시험감독, 자가격리자 관리, 재난대비 훈련, 소방훈련 등 그야말로 별별 업무가 다 있다. 거기에 더해 때때로 모금과 헌혈에도 동원된다.

부서마다 차출의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차출순서를 정해 차출할 일이 생길 때마다 순서대로 돌리는 방법. 자원을 받는 방법.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를 하는 방법 등등. 차출에 동원되었을 때 까탈스럽게 굴면 미움을 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언제,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모르는 공무원의 특성상, 되도록 타업무에 협조해줄 필요가 있다. 내가 그토록 불평불만을 쏟아냈던 남의 업무가 몇 달 후 내 업무가 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방직공무원이 되고 싶은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열린 마음으로 모든 업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시기 바란다. 물론 힘들고 짜증날 때도 많지만,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다.

퇴사를 하게 되면, 더이상 차출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주 다행스럽고, 가끔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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