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원래 조용한 사람은 아닌데

수트레스 2021. 4. 2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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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나의 이미지는 조용하지만, 똑 부러지는 사람이다.

일하는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맡은 일은 빠르고 꼼꼼하게 처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내가 입을 여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업무적으로 해야 하는 말이 있을 때. 둘째, 내가 기분이 좋아서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둘째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말수가 적다, 너무 조용하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라고들 한다.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동료들과의 사이는 무척 좋은 편이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힘든 일을 자원하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한다. 나는 진심으로 지금 내 옆의 동료들을 좋아한다.)

놀라운 사실은 원래의 내가 회사에서의 이미지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OFF 상태의 나는 아주 수다스럽고, 유치하고, 허술하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내가 어떻게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까. 원래 조용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도 회사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무거운 공기가 있는 것 같다.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돼서, 신중히 말을 고르고, 그러다 타이밍을 놓칠 때도 많다. 이 말을 하면 나를 예의 없다 생각하지 않을까, 무능력해보이지는 않을까. 내가 하는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되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 그렇게 여기에서 도망치려 하면서도 나는 이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침묵을 지키는 것도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쿨한 척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30년이 넘도록 줄곧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를 떠나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이 쓰인다. 이왕이면 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성실하고 따뜻했던 동료, 딱 이 정도.

그리고 앞으로는 어디에서도 내 원래 모습 그대로를 지키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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