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가족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수트레스 2021. 5. 3. 23:27
728x90
반응형

D-58

어디서 이런 재미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가족같은 분위기라고 해서 갔는데 진짜 가족끼리 하는 식당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글을 읽을 때만 해도 생각없이 웃었는데 살다보니 이건 엄청난 진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가족같은 분위기로 일을 했다가는 아마 큰일이 날 것이다. 가족들과 있을 때의 나는 화가 나면 버럭버럭 화를 내고,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주먹을 부르는 어리광을 부린다. 물건을 질질 흘리고 다녀도 엄마가 다 치워준다. 이렇게 일을 했다가는 분명히 하루만에 왕따가 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동료같은 분위기에서 일한다. 동료들의 눈치를 보는 덕에 서로를 배려할 수 있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덕에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월급값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처리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스스로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언제든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료를 걱정하며, 언제나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어느 조직에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사람이 많은가에 따라 지자체마다,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결론적으로 어떤 분위기에서 일하게 될 것인가는 오로지 운에 달려있다.

1년 반 전에, 호기롭게 내뱉었던 퇴사선언을 슬그머니 거둬들인 이유 중 하나는 내 옆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처럼. 그 때는 그 따뜻함으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무리 좋은 분위기에서 일해도 회사를 그만두고 누군가는 아무리 험악한 분위기에서 일해도 버텨낸다. 나는 약해빠지고 배은망덕한 사람인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떠나기가 힘이 들었나보다. 가족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나는 이 곳에서 최고의 동료들을 만났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는 아마 혼자 일하게 되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추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런 동료가 되어줄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텐데, 혼자 일하고 싶다고 떠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 분위기에 관해 쓰다보니, 쌩뚱맞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관공서의 사무실은 둘 중 하나다. 숨막힐 듯 조용하거나, 고성이 오가거나. 조용하든, 시끄럽든 음악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왜 관공서에서는 음악을 틀지 않는 걸까? 이 곳에도 음악이 절실히 필요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