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6
오늘도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라는 말을 들었다.
600명도 넘는 직원들이 각자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면 관공서에서 모든 업무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 어린이 날에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들과 씨름하며 나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당직이라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모든 관공서의 문을 닫고, 전 부서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당직근무자 3명이 모두 받고 처리한다. 보통 휴일인 것을 모르고 전화하는 경우가 50%, 휴일이고 담당자가 출근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당장 처리해달라는 경우가 20%, 기타 단순 문의가 30%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단순 문의에는 동 이름에 어떤 한자를 쓰는가? 같은 다소 황당한 문의부터 길안내, 전화번호 안내 등등이 있다.
오늘 단연 많았던 문의는 코로나 관련 문의였다. 어제 검사를 했는데 결과를 알려달라,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가, 오늘 선별 진료소에 가면 검사가 가능한가 등등. 이런 전화들은 건수는 많지만 정확한 답변을 줄 보건소 직원들이 상시 출근해있기 때문에 그나마 수월하다.
문제는 담당자가 출근하지 않았는데, 당장 해결을 요구하는 경우다. 현장에 나가서 해결이 될 만한 일이면, 당직근무자가 현장에 나간다. 하지만, 지난번에 했던 지원금 신청이 잘 접수됐는지, 왜 이번 달에 받기로 한 쌀이 아직 안 나오는지, 누군가가 이 도로가 사유지라고 우기는데 그곳이 누구 소유의 땅인지 같은 질문들은 당직자 선에서 해결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평일에 담당자와 통화를 하셔야 한다고 아무리 양해를 구해도 그분들은 당장 답변을 듣기를 원한다. 그때 화가 난 민원인이 하는 말이 바로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언론 또는 이웃사람에게 들은 잘못된 정보에 대해 문의하여 무척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무슨무슨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신청하면 되는가? → 죄송하지만 그런 사업은 처음 들어보는데 어디서 들으셨나? → 아니,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나? 이런 식이다.
유난히 민원응대를 힘들어하는 나는 당직실의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또 해결 못하는 민원이면 어떡하지,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시면 어떡하지.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만, 소수의 차가움이 나를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든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당직실에서 받는 모든 전화가 두렵다.
당직비 6만원을 소중하게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따뜻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평생 그 어떤 당직실에도 전화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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