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신규교육의 추억

수트레스 2021. 5. 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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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 연재되는 김중혁 작가의 「일일 창의력」 첫 화에서는 '가구 위치 바꾸기'를 추천한다. 어떤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사소한 행동만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때마침 공휴일이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은 의무감으로 태블릿을 꺼내 내 방의 배치도를 그려보았다. 침대, 책상 두 개, 의자 세 개, 책장 하나, 전자피아노 하나, 일인용 좌식 소파 하나. 적다 보니 이 작은 방에 이게 어떻게 다 들어가는 걸까.

어릴 때, 학교에 갔다오면 수시로 가구 위치가 바뀌어 있곤 했다. 어떻게 하면 그 좁은 집에 다섯 식구의 짐을 가장 보기 좋게 배치할 수 있을지 엄마는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덕분에 엄마는 혼자서도 가구를 척척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 방 가구를 옮겨보자는 내 말에 엄마는 반색하며 동참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침대와 책상의 위치부터 완전히 바꿨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곳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빈틈 하나 없이 가득 차 있는 책장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정리를 하다 보면 어딘가 쑤셔 박아 놓고 깨끗하게 잊어버렸던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서 추억을 방울방울 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무심히 집어든 서류봉투 안에서 공무원 신규 교육 때 받은 수료증과 사진들을 발견했다. 벌써 4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내 남루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억이 남아있다.

신규공무원들은 3주 간의 신규교육을 받아야 한다. 운이 좋으면 임용 전에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임용 후에 교육을 가게 되기 때문에 3주 간의 업무공백이 생겨버린다. 나는 최소한의 업무공백을 만들기 위해서 미루고 미루다, 무려 1년이 지나서야 교육을 갈 수 있었다.

교육기간 동안에는 인재개발원이라고 부르는 교육원으로 매일 출근한다. 사실, 공문서 작성법이나 선배들의 경험담 같은 강의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서 회사생활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아마도...

교육원에서 13명 정도로 구성되는 분임을 만들어주는데, 그들과 3주간 과제를 함께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게 3주는 가까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끔 안부를 묻고 좋은 일을 축하하며 잘 지내고 있다.

교육생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속에서 나는 조금 어색하긴 해도 즐거워 보였다.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감은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니까.

코로나 시대의 신규공무원들은 비대면으로 재택교육을 한다고 들었다. 지방직 공무원들에게 흔치 않은 재택근무를 할 기회를 얻은 대신, 오랫동안 동지애를 나눌 친구들을 만들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재택근무를, 어쩌면 그냥 집순이 생활을 하게 될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 유대감과 동지애를 나눌 수 있을까. 백수가 되려면,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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