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메신저가 없었다면

수트레스 2021. 5. 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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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컴퓨터에서는 개인 메신저나 메일을 쓸 수 없다. 즉, PC카톡과 다음 메일을 쓸 수가 없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온나라메신저'라는 공공기관 전용 메신저와 '공직자 통합메일'과 '온메일'이라는 공직자 전용 메일뿐이다.

그중에서도 온나라메신저는 카톡 못지않게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메신저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고, 쪽지를 주고받거나 대화방을 만들어 대화를 할 수 있다. 메신저는 자료를 주고받고, 업무협의를 하는 중요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어찌 그 좋은 도구를 그렇게만 쓸 수 있을까. 많은 회사원들이 회사 컴퓨터에 투명한 PC카톡창을 띄워놓는 것처럼 공무원들도 이 온나라메신저로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점심은 뭘 먹을지, 오늘 야근을 할 건지, 몇 시에 퇴근할 건지 같은 일상적인 잡담을 하기도 하고 오늘 억울했던 일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잘 안 풀리는 업무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메신저는 단연 공무원들에게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 할 수 있다. 메신저가 없었다면 아마 더 많은 공무원들이 우울증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바쁜데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어디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정말 신기하게도 조용히 일만 하는 것보다, 업무 틈틈이 메신저를 할 때 업무능률이 더 오른다.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위로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사람은 소통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인 모양이다.

회사생활 내내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소통창구가 이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문득 눈앞이 캄캄해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은 크게 믿지 않지만, 대화가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화를 나누려면, 핸드폰을 들어 카톡을 보내야 하고 상대방이 핸드폰을 집어 들 여유가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부디 그 시간이 너무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돌아오고 싶어지면 아주 곤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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