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일복이여, 내게 오라

수트레스 2021. 5. 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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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일복이 없을 때도 있을 때도 있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20대 초반, 피자가게에서 일할 때는 영광스럽게도 직원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으로 손꼽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있는 날에는 손님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일복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20대 중반, 서점에서 일할 때는 내가 있는 날에도 매출이 아주 좋았다. 내가 엄선하여 전시해둔 책들은 꽤 잘 팔렸고, 계산대의 줄이 길었고, 일 매출도 대단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일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친듯이 바쁘다가 어느 순간 평화가 찾아왔고, 평화에 익숙해질 때쯤에는 어김없이 일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평범한 일복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유난히 일복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나타나면 파리가 날리던 카페에 손님이 꽉 차고, 1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마치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일복이 있고 없고는 오늘의 운세처럼 아무 맥락없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은 조직 내에서 능력을 드러내는 실수를 해버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형벌 같은 거랄까. 그렇게 '뭘 시켜도 하는 사람'으로 찍히는 순간 그야말로 하는 놈만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요즘 들어 격하게 '하는 사람'이 돼버린 한 주사님의 일복 한탄을 듣고 있었는데, 주사님이 갑자기 나에게 자신의 일복을 가져가라는 게 아닌가. 순간 섬뜩했지만 이어지는 주사님의 설명에 무릎을 쳤다.

대부분의 경우에 일복이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프리랜서에게 일복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복이다. 프리랜서의 길을 가려는 나에게 그보다 좋은 덕담이 있을까.

부디 주사님의 넘치는 일복을 내가 받아서 잘 나가는 프리랜서는 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일하는 프리랜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복이여, 내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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