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4
왜 사람들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야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직까지도 많은 직장인들이 상사보다 늦게 출근하고 먼저 퇴근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도 제대로 안 해놓고 6시 땡 하고 집에 가는 사람은 누가 봐도 밉겠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 업무를 완벽히 끝내고도 사람들은 왜 먼저 가겠다는 말을 못 하는 걸까.
집과 회사가 1시간 거리라는 것, 아침잠이 많다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내가 늦게 출근하는 이유는 일찍 출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은 어쩔 수 없지만, 여유가 있는 날에는 5분 전 출근, 5분 내 퇴근의 소소한 권리는 누려도 되는 거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매일 정확히 8시 53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18시 5분 안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 뵙겠습니다."를 선창 한다. 그만둘 사람이라 그러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나는 5년 내내 일관성 있게 그래 왔다. 원래 눈치를 안 보는 성격이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나는 트리플 A형이다. 친구가 내 카톡에 답장을 안 하면 내가 실수했나 싶어서 너무 걱정이 된다.
내 생각에 이건 직장 내에서의 승승장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오랜시간동안 일했다는 이유로 승진을 시켜줄 정도로 조직은 단순하지 않다.
가끔 내가 10분만 일찍 출근하면 사람들은 조금 놀란 얼굴로 "오늘 일찍 왔네요?"라고 말한다. 그래도 될까, 고민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행동하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게 익숙해지면 이상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늦게 출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하는 게 취미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통하지 않겠지만 혹시 조금이라도 출퇴근 시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일주일 정도 칼퇴근에 도전해보았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가 일찍 집에 가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다.
하지만 개인의 눈치코치를 논하기 전에, 올바른 칼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먼저 갖춰야할 것들이 있다. 공정한 업무분장과 빠른 인원 충원,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마음. 업무는 사이좋게, 그리고 보기 좋게 잘 나누어서 하고 사람은 부족하기보다 넘치게 뽑아주었으면 좋겠다. 부디 내가 힘든 것만 보지 말고 옆 사람이 힘든 것도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가 거리낌없이 칼퇴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좋은 세상 아닐까?
'퇴사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무원 퇴사일기] 매일이 나들이 같은 날들 (0) | 2021.05.29 |
---|---|
[공무원 퇴사일기] 일복이여, 내게 오라 (0) | 2021.05.28 |
[공무원 퇴사일기] 메신저가 없었다면 (0) | 2021.05.26 |
[공무원 퇴사일기] 이름이 뭐든 쉬는 날은 무조건 행복한 날 (0) | 2021.05.25 |
[공무원 퇴사일기] 자가격리자 없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0) | 2021.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