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3
모든 회사원이 그렇겠지만 공무원들도 "내가 때려치고 만다! 복권만 당첨되면."이라는 실없는 농담을 자주 한다. 보통은 그 말이 농담에서 끝나지만, 실제로 퇴직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내가 본 첫번째 자발적 퇴직자는 오랫동안 사법고시를 공부한 40대 남자였다. 큰 꿈을 안고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동안 사법고시에 매달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비교적 쉽게 합격할 수 있는 공무원으로 넘어온 케이스였다. 실제로 그는 아주 짧은 기간 안에 합격했다. 하지만 40대가 훌쩍 지나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사회생활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10살도 더 어린 선배,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업무, 재미도 보람도 없는 하루하루의 연속. 아마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힘들었을 것이다. 절대 그의 진짜 마음을 알 수는 없겠지만, 더 큰 일, 더 멋진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사직서를 낸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대기업 출신의 30대 남자였다. 이런 경우는 공무원 세계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다. 돈은 많이 벌지만 돈을 쓸 시간이 없는 미친 업무량을 체험해본 그들은 워라밸을 위해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막상 들어와보면 여기서도 워라밸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래도 사기업보다는 낫다고들 한다.
그는 입사한 지 10일 만에 퇴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대체 열흘동안 무슨 일을 해봤다고 그만두겠다는 건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결단력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퇴직자가 있었다. 지금은 10년만 일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20년을 일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던 시절에 딱 20년 채우고 퇴직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던 중년의 여자분이었다. 20년을 채우던 그 해에, 마침 가기 싫은 부서로 발령이 났고 미련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공무원 연금수령의 최소 근무연수가 10년으로 바뀌면서, '10년만'을 외치는 공무원들도 많이 생겼다. 나도 한 때는 딱 10년만 버텨볼까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직업을 가지기에 충분할만큼 길고, 소중한 시간이니까.
이 외에도 도저히 업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사직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고, 우울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직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퇴직자로 기억될까? 아마 대책없는 이상주의자, 아니면 꿈 많은 사춘기 처녀 정도로 기억되지 않을까. 몇 년 뒤에, 내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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