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퇴사를 미루고 미뤘던 이유 중 하나는 그만둔다는 말을 꺼낸 후부터 마지막 출근을 하기까지의 그 시간을 견디기 싫어서였다.
내 빈자리에 대비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 그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 좀 길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일찍 퇴사를 알렸는데, 결과적으로 사직원을 쓰기도 전에 여기저기 소문이 퍼지고 말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내 이야기가 어떻게 와전되고 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든, 그게 내 인생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겠지만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직접 겪어보니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퇴사를 결심하면서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완벽히 알 수 없는 퇴사의 이유들을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는 일은 꽤나 재미있는 일일 테니까. 로또에 당첨되거나 코인이 대박 난 건 아닌지, 자신들이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인간은 원체 비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을 즐기지 않나.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내 이야기가 어떻게 돌고 있든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퇴사를 딱 한 달 앞둔 나에게는 회사에서 보고 듣는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쯤 되면 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할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어디까지 시켜도 될지 판단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계속 다닐 사람처럼 모든 일에 발벗고 나설 수도 있지만 그만두는 사람이 너무 주제넘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 발 물러서 있자니 이제 그만둔다고 막 간다 생각할까 걱정된다.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미 나에게는 퇴사 예정자라는 필터가 씌어진 뒤이므로 모든 것이 달리 보일 것이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퇴사 예정자로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인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요즘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마지막 출근날의 어색함이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엉덩이는 들썩들썩. 언제,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 어색하지 않을지, 인사는 어디까지 다녀와야할지 수도 없이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겠지...
어떤 이별이든 이별의 순간이 가장 두렵다. 이별 장면이 없는 이별을 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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