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
시험 합격 발표가 나자마자 면접 준비도 하지 않고 급히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내 평생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수입이 없으니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2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감사하게도 아르바이트 면접에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남들은 면접 학원 수업에 스터디에 인맥 쌓기에 정신없이 바빴을 그때, 나는 즐겁게 커피와 슈크림빵을 팔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면서 틈틈이 내가 지원한 지자체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내 면접 준비의 전부였다.
그렇게 모의면접 한 번 경험해보지 못한 채로 나는 면접자 대기실에 외로이 앉아있었다. 큰 강당에서 다른 면접자들과 다 같이 앉아있는데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뛰고, 손도 덜덜덜 떨렸다. 학원이나 스터디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주변 사람들을 보니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혼자서는 어떤 질문을 받게 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뭘 공부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는 것뿐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파티션으로 구분된 몇 개의 공간 중 한 군데를 안내받았고, 내가 들어서자 두 명의 남자 면접관이 나를 반겨주었다. 자리에 앉아 자기소개를 하는데, 순간 내가 사오정이 된 줄 알았다. 내 떨리는 목소리가 안쓰러웠는지, 면접관님들이 떨지 말라며 따뜻하게 격려해주었다.
시에서 하는 사업에 대한 질문은 홈페이지를 뒤적거린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스무스하게 넘길 수 있었는데, 문제는 다음 질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당신은 리더십이 있는 유형인가, 리더를 따라가는 유형인가?"
당시의 나는 내성적인 사람의 표본이었고, 솔직함 빼면 시체였기 때문에 솔직하게 따라가는 유형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말이 화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따뜻한 줄 알았던 면접관님은 조직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항상 한 발 물러서 있을 거냐며 나를 다그쳤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압박 면접인가 싶었다.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보니 허무하게 면접이 끝나버렸다. 면접장을 나오며 망했구나 싶었다.
면접 학원을 안 다닌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모의면접을 해보며 이게 바로 면접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욱 면접장에 가고 싶지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몰랐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면접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남자친구와 시청 주변에서 초밥을 먹었다. 면접을 망쳤어도 초밥은 맛있었다. 면접관의 공격이 쏟아지던 그 순간에는 그렇게 벌벌 떨었으면서, 편안한 상태가 되니 반박하고 싶은 말들이 수십 가지도 더 생각났다. 남자친구는 면접관 대신 그 수십 가지 반박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이것은 합격과 불합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다. 아직까지도 그때 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내 억울함과는 상관없이 내가 적어도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니 공무원 면접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면접관 앞에서 절대 쫄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쫀다고 불합격한다는 뜻이 아니다. 쫄든 안 쫄든 당신은 합격할 확률이 크다. 그러니까 나처럼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말을 다 하고 오길 바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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