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2
내가 근무하고 있는 구청 건물은 지은 지 오래된 것치고는 꽤 크고 깨끗하다. 예전에 업무 때문에 다른 구청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같은 시에 소속된 구라도 각 구청의 근무환경 격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어떤 구청은 1층에 커피숍이 있는 데다 건물 전체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반면, 어떤 구청은 공간이 부족해 인근 건물에 사무실을 추가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0년 정도의 시간을 새 건물에서 보낼 것인가, 낡은 건물에서 보낼 것인가는 온전히 인사담당자의 손에 달려있다.
건물의 차이는 크지만,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은 거의 비슷하다. 대체로 각자 책상, 의자 하나씩과 컴퓨터 한 대, 개인서랍과 캐비닛을 이용할 수 있고, 인사이동을 할 때는 쓰던 것을 그대로 물려주고 떠난다. 책상과 의자 같은 가구들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지 않는 이상은 거의 바꾸지 않는다. 대신, 모든 업무를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컴퓨터는 심각하게 느려지기 전에 바꾸어 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사무실의 크기는 비슷비슷한데, 어떤 과는 인원이 많고 어떤 과는 인원이 적다. 그래서 인원이 많은 과에서는 사무실을 좁게 쓸 수 밖에 없다. 우리 과는 특히 좁은 편에 속하는데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내 뒷자리가 정말 좁다. 정말 잠시도 편안하게 엉덩이를 빼고 앉을 수 없다. 마치 의자에 갇힌 것처럼 바짝 당겨 앉아야만 내 뒤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쩍 뜨거워진 공기를 식히느라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선풍기를 일찍부터 꺼내두었지만, 나는 선풍기를 쟁취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뒤에 선풍기를 놓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선풍기 하나 없이 여름을 버텨냈는데 올해는 6월 한 달만 잘 버티면 되니까, 다른 직원들의 넓은 이동환경을 위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더워지고, 잠시만 움직여도 얼굴 가득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더위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7월이나 되어야 에어컨을 아주 미세하게 틀어줄 텐데, 28도짜리 냉방은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어디 없을까. 올 여름, 내 방 책상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원 없이 맞으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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