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는 펜팔처럼 나에게도 펜팔 같은 동료들이 있다.
마주 보는 일 없이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 소통하고, 오로지 일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는데도 신기하게 우정 비슷하게 생긴 전우애가 생길 때가 있다. 특히 같이 고생을 한 경우에는 더더욱.
가장 최근에 동행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Y와도 힘든 일을 함께 해낸 후 전우애가 두터워졌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 얼굴도 알지 못했지만 잦은 통화를 하며 서로에게 깊은 동질감과 고마움을 느꼈다. Y와 가까운 곳에서 일했다면,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그만두고 없는 7월 초가 되어야, 아마 Y는 구청으로 발령을 받게 될 것이다.
"7월에 저 구청 가면, 가끔 차도 마시면서 수다 떨어요."
오늘 한참 업무이야기를 나누던 중 Y가 말했다.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말하기 좋은 기회가 왔다, 싶었다.
"사실은 저 이번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기로 했어요."
내 말에 A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이내 탈공무원을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주식을 열심히 해서 자기도 꼭 탈공무원하겠단다. 회사원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음 속 깊이 Y를 응원했다.
가끔 차 마시면서 수다 떠는 일은 내가 그만둔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과연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요즘 내가 친한 회사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나 그만둬도 나랑 놀아줄 거지?"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걱정이 된다. 나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깨닫고 있어서일까. 내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이, 누군가는 동료가 아닌 나와 관계를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그래도 놀아달라고 떼를 써서라도 나는 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가까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꽤 비슷하기를 기도한다. 얼굴도 모른 채로 친구가 될 수 있었듯이, 몸은 멀어도 마음은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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