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 + 2
어쩌다 보니 사직원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다 이제야 제출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인사담당자로부터 내가 구두로 보고한 퇴직 일자에 맞추려면 적어도 오늘은 사직원을 내야 한다는 독촉의 말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낼 것을. 사직원을 내라는 말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어쩐지 쫓겨나는 기분이 들어 서운했다. 물론 이런 기분을 느끼는 내가 더 황당하지만.
급여 문제로 퇴사일을 6월 30일에서 7월 2일로 조정하는 바람에 디데이가 2일 뒤로 밀려버렸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 배려를 받은 셈이다.
준비해둔 사직원과 퇴직자 보안서약서를 작성하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서명을 했다. 지난 5년동안 늘 꿈만 꾸던 순간이 드디어 현실이 됐는데 허무할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사직원을 받아 든 담당주사님의 안타까운 얼굴이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 제출한 사직원이 계장님, 과장님을 지나 겨우 30분 만에 결재되어 있는 것을 보니 그제서야 훅- 실감이 났다. 모든 직장인들이 품고 다닌다는 사직서는 일단 꺼내는 순간, 고민했던 수 천 일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나를 밀쳐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퇴사에는 전진만이 남았다.
내일부터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헤매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사직원을 구경하며 내가 퇴직 사유로 적은 개인 사정이 뭔지 궁금해할 것이다.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대답해줄 자신이 있으니 부디 억지 추측을 하지 말고 나에게 직접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요즘 하루하루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잘될 거라는 응원을 받을 때는 잔뜩 업된 기분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주변 사람들이 내가 없는 시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금세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내 기분이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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