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9+2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용기 있다." 또는 "용감하다."
바이킹만 타도 울먹이는 나인데, 태어나 처음으로 용감하다는 말을 원 없이 듣고 있으니 낯설기만 하다.
옛날에는 '그만두려는 직원들을 어르고 달래 끝까지 함께 가자.'라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당신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 용기가 부럽다.'라는 분위기로 점점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아까우니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는 조심스러운 권유는 있었지만, 대책 없이 나가면 굶어 죽는다는 식의 협박성 멘트는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요즘 같아서는 내가 맡고 있는 일들과 나를 찾아오는 민원인들이 '너 말고 하고 싶은 사람 많다. 이거 못 해내면 알아서 떨어져라.'하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반박이 힘들 정도로 맞는 말씀이고 그 말씀대로 떨어져나간 사람도 아주 많다. 일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모두가 퇴사라는 꿈을 꾸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책은 없다. 그러니 나 같이 대책 없이 떠나는 사람조차 미친 사람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으로 미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만두는 것은 시작하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쉬워보인다. 그냥 있는 것을 내려놓으면 되니까. 하지만 겪어보니 내려놓는 것이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내려놓기에 실패한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나 같은 용감한 바보를 부러워하는 거겠지.
나는 근본이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무도 돈을 걸지 않을 만큼 낮은 확률에 외로이 배팅한 채 큰 한 탕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용감한 척 하지만 사실은 많이 무섭고 두렵다. 힘들게 나갔으니까 정말 잘 되길 바란다, 유명한 작가가 될지 모르니 사인을 미리 받아놓겠다, 이렇게 따뜻한 덕담과 농담들이 부담으로 느껴질 만큼 많이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매번 그만두는 쪽이 이기는 이유는 나에게 그만두는 것은 용기이고, 그만두지 않는 것은 포기이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용감한 척 좀 맘껏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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