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제안은 거절합니다

수트레스 2021. 6. 1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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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에게 국민신문고가 있다면, 공무원에게는 공무원 제안이 있다.

1년에 2번,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아이디어나, 새로운 정책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국민신문고를 통해 들어오는 제안만으로도 버거운 동료직원들에게 업무를 보태주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 공무원들은 제안에 소극적인 편이다.

반면, 아이디어는 차고 넘치는데 눈치는 조금 모자란 나는 입사 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무원 제안에 참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공무원 제안 한 건당 문화상품권 2만 원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문화상품권은 무척 탐나는 상품이었고, 업무를 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회사에서 아니면 딱히 쓸 데도 없었다.

공무원 제안의 절차는 이렇다. 공무원 제안 담당부서에서 전부서의 제안을 취합한 후, 그 제안과 관련된 업무담당자에게 제안에 대한 의견을 요청한다. 해당 업무 담당자는 그 제안을 채택할 것인지 채택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이유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부서에서 채택한 제안에 대해서는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에 최종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수많은 제안들 중에 최종 심의에 들어간 제안도 있었지만, 결국 예상대로 채택의 코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아주 옛날에는 채택을 받아서 특별승진을 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짧은 공무원 생활 동안에는 한 번도 채택된 제안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공무원 제안은 거절당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타 부서의 업무를 잘 모르는 탓에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제안을 하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제안들이 예산이 낭비되거나 실용성이 부족한 제안에 그치는 탓일 것이다. 근무하는 동안 나의 제안이 하나라도 채택되었다면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국민신문고가 남아있다. 이 글을 읽으며 기겁할 공무원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역시 제일 무서운 건 민간인이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민간인이 되는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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