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2
오늘로 나의 의원면직이 결정되었다. 이제 무를 수도 없이 진짜 퇴직자가 되어버렸다.
가까웠던 동료들과 밥 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작별인사도 얼추 끝냈다. 참 기나긴 여정이었다. 마지막 근무일을 기다리고 기다렸었는데,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정말 내 이야기 맞는 건가?
아름다운 퇴사를 하게 된 기념으로 고마웠던 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은 퇴사를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마지막 감사선물을 뭘로 해야 할지 가장 많이 고민해왔다.
고마웠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아보니 50명이 넘었다. 곧 백수가 될 몸이니 너무 비싼 것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너무 싼 것을 하자니 내 마음을 표현하기 부족할 것 같았다. 나와의 지독한 싸움 끝에 인당 3천 원~4천 원 정도로 합의를 보았다.
이제 정해진 예산 안에서 최선의 선물을 고르는 일이 남아있었다. 나의 퇴사 답례품 후보는 다음과 같았다.
1. 쿠키, 마카롱 등 빵류
가장 무난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선물할 수 있고 다양한 가격대로 제공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다.
하지만 너무 흔하기도 하고, 단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아니라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될 수 있다.
2. 견과류
플라스틱 보틀에 들어있는 종합 견과류. 가격도 저렴하고 보틀에 붙일 스티커도 주문 제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견과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
3. 홍삼 스틱
홍삼 스틱과 함께, 먹고 힘내시라는 호기로운 메시지를 적고 싶었지만 이걸 샀다가는 내가 굶어 죽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적극 추천. 직장인 정도 되면 몸에 좋은 건 무조건 좋아한다.
4. 손세정제 및 손소독제
요즘 같아선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흔한 아이템이지만 시국이 이렇기에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가격 합격, 디자인 합격, 맞춤 스티커 제작 합격, 배송일자 합격. 꼼꼼하게 따져 주문 완료.
오늘 업무를 마치고 고마운 회사 동생들과 함께 정성껏 답례품을 포장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의 퇴사를 함께 준비해주어서 마음이 한없이 아쉽고 또 행복했다. 1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된 답례품은 매우 흡족했다. 겨우 몇 천 원짜리에 불과하지만 내 5년 간의 고마움이 잘 전달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퇴사 답례품을 고민하고 있다면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해보니 답은 없더라. 고마운 마음은 선물이 아니라 눈빛으로 전달된다. 선물은 그저 허전한 손을 채울 뿐.
'퇴사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무원 퇴사일기] 소중한 1%의 인싸력 (0) | 2021.06.27 |
---|---|
[공무원 퇴사일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0) | 2021.06.26 |
[공무원 퇴사일기] 내가 원하는 모습과 남들이 보는 모습 사이의 간극 (0) | 2021.06.25 |
[공무원 퇴사일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0) | 2021.06.23 |
[공무원 퇴사일기] 자존감, 그게 어디 쉬운가 (0) | 2021.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