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2
작년 이맘때쯤 나는 멋진 선배님 한 분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그는 나에게 7급 같은 9급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따뜻한 선배였고, 나의 첫 퇴사 소동 때 누구보다 나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준 사람이었다. 그분이 계장이 되기 얼마 전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나는 입사 후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서툰 신규였고, 그분은 구청 내에서 손꼽히는 엘리트였다. 내가 답답할 법도 했을 텐데 그는 한 번도 나를 혼내는 법이 없었고, 나는 그의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먹고 쑥쑥 자랐다.
6개월 뒤 선배는 계장이 되어 떠났지만, 몸은 멀리 있어도 여전히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내가 진짜 7급이 되었을 때 같은 부서에서 계장님을 다시 만났다. 언제나처럼 계장님은 부서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계셨다.
초여름이었던 지난해 어느 날, 출근길에 전해 들은 계장님의 교통사고 소식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모든 게 장난이길, 누군가의 실수로 잘못 전해진 것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사무실의 공기는 무겁고 어두웠고,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속하게도 계장님의 자리는 비어있었고, 나는 넋이 나간 채 자리에 앉았다.
바로 전날, 계장님이 커피를 사준다고 했는데 다이어트를 핑계로 거절했던 것이 떠올라 가슴을 쳤다. 그게 마지막 커피일 줄 알았으면 절대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 내일도 모레도 사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졸랐을 텐데.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애써 추스르고 자리에 앉았지만,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파일 하나를 발견하고 또 무너져버렸다. 그 파일은 계장님이 손수 정리한 건강책 요약본이었다. 건강하게 오래 가족 곁에 있겠다던 계장님의 바람은 한순간에 허망하게 흩어져버렸다.
3일 동안 장례식장을 지키며 생각했다. 내 인생을, 내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구나.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사랑해야겠구나. 그래서 나는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에는 바퀴가 달렸는지, 애써 나아가지 않아도 빠르게 내달린다. 그렇게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따뜻하게 웃어주던 계장님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스몰 웨딩을 하겠다는 내 말에 자신만은 꼭 불러달라고 애원하던 모습도 손에 잡힐 듯하다. 계장님과의 추억이 가득한 이곳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고마웠다고, 잘 살겠다고 직접 만나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계장님이 잠들어있는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아주 오랜만에 계장님과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계장님, 저 이제 진짜 갑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 잊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보고 싶은 계장님, 부디 편히 쉬세요.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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