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공무원 퇴사일기] 적응을 잘 하는 걸까, 감정이 메마른 걸까

수트레스 2021. 5. 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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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령받은 부서에서 일한 지 4개월 남짓 되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인사발령을 받았다.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던 내게 4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익숙해진 사람들을 떠나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척 절망적이었다.

새로운 부서에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선배 언니를 붙잡고 나는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다 큰 어른이 그깟 일로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첫 부서에서 떠날 때 꽤 많은 직원들이 눈물을 흘린다고 들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눈물로 시작한 두 번째 부서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가장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4개의 부서를 거쳐오면서 가장 오랜 시간 근무한 곳이기도 해서, 이 곳을 떠날 때 씩씩하게 돌아서는 나를 보며 동료들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며 농담 섞인 타박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놀랄 만큼 무감각해졌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고, 나도 1~2년에 한 번씩은 정든 부서를 떠났다. 그렇게 많은 이별을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쿨하게 보내고, 쿨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그 빈자리를 채웠고, 며칠만 지나도 그 자리가 원래 그 사람의 자리였던 것처럼 익숙해졌다.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져도 결코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은 각박한 현실을 깨달은 후 스스로 적응의 귀재가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회사에서만은 어떤 변화를 겪어도 아무렇지 않아서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다.

그런데, 퇴사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니 또 기분이 남다르다. 이건 변화의 스케일부터 남다르기 때문일까. 이제 매일 아침 8시에 집을 나서는 대신, 여전히 잠옷 바람으로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나를 도와줄 동료들 없이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조직생활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그 울타리가 그리워질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과는 달리 일주일이면 마치 원래 그게 내 삶이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적응할 테니까. 3일만 쉬어도 '원래 내가 백수였던가?' 싶은 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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