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0
출근길에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편도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나에게, 출퇴근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 2시간,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고, 듣고 싶은 노래를 듣고,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그것에 의존해야만 출근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이 시간만은 절대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최대한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혹시라도 눈을 돌렸다가 아는 얼굴과 마주치면 서로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눈 순간, 그때부터는 출근길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은 상대방도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물론 드라마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단 5분이라도 함께 출근하려고 100미터 달리기도 마다하지 않지만, 문제는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이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에게 호감이지만, 그다지 할 말은 없는 사이.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그때 눈을 돌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가만있는 날씨 이야기나 늘어놓으며 빨리 회사에 도착하기만을 바란다. 가뜩이나 기운 없는 출근길 위에서 그런 일로 에너지를 낭비할 순 없다. 그러니까, 그들과 나는 서로의 힐링타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한심하고 치졸하게 느껴질 때마다 내가 뚜벅이라는 사실이 서러워진다. 나에게 차가 있었다면,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도 인권이 있다면, 그런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이미 오래 전에 드림카를 점찍어 두었다. 하지만, 지금 차를 산다는 건 회사에 계속 다니겠다는 뜻이겠지? 역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몸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언젠가 북적이는 출근길이 그리워질 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그 시간을 지키려 노력했던 그 때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창밖의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어색한 사람과 시시한 이야기도 나누어가며 여유있는 아침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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