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8
나보다 먼저 누군가가 여기를 떠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의 마지막을 앞두고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기분은 꽤나 묘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박스 가득 짐을 챙기는, 어디서 많이 봤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그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내 앞에 다가온 이별을 무섭도록 실감했다.
장황하게 말해서 누군가가 먼저 그만뒀나보다, 했겠지만 사실 그 주인공은 우리 과 사회복무요원이다. 그는 내가 이 부서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온갖 심부름을 군말없이 해주던 든든한 친구였다. 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이 21개월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나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 당연한데도 내가 이 곳의 사람들과 이별하기 위해 준비한 시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일찍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1년 반동안 주5일을 만나던 사람을 당장 내일부터 만나지 못한다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일단 실감이 잘 안 나고, 이렇게 가고나면 언제 또 볼까 아득하기도 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당장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이렇게 후회와 미련이 많은데, 이 많은 사람들을 한순간에 어떻게 보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떠나는 날까지 떠나지 않을 것처럼 있다가 원래 없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싶었는데, 사람이란 애초에 그럴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나부터가 홀연히 이 곳을 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두려워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매일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다행스럽게도 이 마음 넓은 친구가 곧 백수가 될 나와 친구가 되어준다고 한다. 한 사람을 덜 잊어도 돼서 참 다행이다.
떠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먼저 가! 곧 따라갈게!"
그 친구가 답했다.
"네. 꽃길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아직 꽃이 피지 않았을 뿐 우리가 갈 길은 무조건 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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