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9
같은 지자체 내에서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을 사송이라고 부른다.
사송이라고 해서 사송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왜 사송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쓰고 있었다.
(아시는 분 댓글로 알려주세요)
보통은 신청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들과 홍보물품 등을 사송으로 주고받는다. 운전직 주사님 한 분이 매일 사송 전용차량에 우편물을 잔뜩 싣고 관할구역을 순회하며 전달한다. 사송 없이는 공무원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송은 아주 중요한 업무다.
나 역시 사송의 덕을 톡톡히 보는 한 사람이다. 사송은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서류와 함께 담긴 간식들과 응원의 쪽지들 때문이다.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주도 파이팅입니다." 같은 소박하고 평범한 쪽지, 사탕 초콜릿 같은 작은 간식이지만, 그것을 쓰고 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뭐라고 쓰면 좋을까?', '단 것을 좋아할까?', '친분도 없는 사이에 이런 걸 보내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 끝에 그래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클 때 용기를 내서 보내곤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소심해서 남들보다 고민이 많다)
그 고민과 예쁜 마음이 눈에 아른거려서 쪽지를 한참동안 버리지 못하고 모니터에 붙여둔 채 오랫동안 보며 위로받곤 한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고 느낄 때, 그 쪽지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은 사송으로 받은 우편봉투 속에서 초콜릿을 발견했다. 본래 목적은 서류 전달이었지만, 내 눈에는 초콜릿만 크게 보였다. 그것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골랐든, 누가 주고 갔는데 먹기 싫어서 '옛다, 너 먹어라.'하고 넣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봉투에 함께 넣는 정성이 마냥 고마워서, 나는 바보처럼 그냥 행복해지는 것이다.
특별히 감동적이게도 오늘의 초콜릿은 본인이 배가 고파 샀는데도, 먹지 않고 나에게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었다고 한다 ㅋㅋ 그래서 내일은 돌려보낼 사송 봉투에 넣을 맛있는 과자를 사러 가야겠다. 화룡점정으로 겉봉투에는 웃는 이모티콘을 정성스럽게 그려야 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한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나도 내일 하루는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퇴사를 한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이 작고 소중한 위로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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