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7
처음 입사했을 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은행에 가서 복지포인트카드라는 것을 만들었다.
며칠 후 카드가 도착했고, 카드로 결제 가능한 복지포인트를 지급받았다. 2월 중순에 입사를 했기 때문에 1년 치 모두를 받지는 못했지만, 대략 8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관마다 금액이 다른데, 기관 내에서도 근속기간이 길고 부양가족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6년 차에 부양가족이 2명인 나의 경우 올해에 1,269,000원을 받았다.
이 카드의 앞면에는 Well-Being Card라고 적혀있는데, 확실히 이 카드는 웰빙을 추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유흥업소 같은 곳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오프라인 매장(심지어 편의점도 된다)은 물론 11번가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서 웬만한 것은 다 사거나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급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아니다보니, 월급이나 수당이라는 느낌보다는 '이게 웬 떡이야, ' 싶은 보너스에 가까운 느낌인데, 이게 생각보다 큰 금액이라 그야말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진다.
복지포인트를 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밥을 사 먹거나, 생필품을 사는 등 생활비처럼 오랫동안 쓰는 반면, 어떤 이들은 자잘하게 쓰면 받은 티도 나지 않는다며 큰 가전제품을 사는 데 몽땅 털어 쓰기도 한다.
작년까지는 1월 1일이 되자마자 부모님을 대형 쇼핑몰에 모시고 가서 겨울 외투를 한 벌씩 사드렸다. 그래봐야 10만 원쯤 하는 비싸지도 않은 점퍼였지만, 내가 사준다는 티를 팍팍 내며 복지카드를 내미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를 핑계로 아직 사드리지 못했다. 사실은 코로나가 아니라 나의 퇴사 때문이었지만.
복지포인트는 1년을 일한다는 가정하에 주는 것이기 때문에, 6개월만 일하는 사람은 6개월치만 받을 수 있다. 6월 말에 퇴사하는 나의 경우, 딱 1/2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딱 절반만 쓰려고 무척 신경을 썼는데도 어느새 반이 조금 넘게 써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다 써버릴 줄 알았으면 부모님과 쇼핑몰에 갈 걸 그랬다.
이제 다시는 회사란 울타리 안에서 "웬 떡"을 받아먹을 수 없을 것이다. 딱 내가 일한 만큼, 딱 내가 잘한 만큼 그 댓가를 받는 현실이 가끔은 야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대신 내가 열심히 하면 부모님에게 100만 원쯤 하는 좋은 외투도 사줄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상상은 공짜니까, 마음껏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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