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이런 날이 진짜 올 줄은 몰랐다.
매일 같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같은 역에 내리고, 한 발짝도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서 회사에 도착하는 익숙해진 나의 삶이 완벽하게 바뀌는 순간. 이 순간이 오면, 그저 홀가분하게 훨훨 날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발걸음은 선택의 여지없이 무거웠다. 아빠는 마지막 서비스라며 출근하는 나를 태워 회사까지 차를 몰았다. 나를 회사에 데려다주는 것, 나의 퇴근길 메이트인 자전거를 지하철역에 가져다 두는 것을 즐거운 소일거리로 여기던 우리 아빠는 이제 즐거운 일 하나를 잃은 셈이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씩씩하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때마침 도착한 엄마의 카톡 메시지를 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다니기 싫은 직장 다닌다고 힘든 우리 이쁜 막둥이, 고생 많았어. 엄마는 영원한 우리 딸 팬이야."
엄마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던 나의 지난 시간이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나를 영원히 지지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큰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을까.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니까 이제 무서울 것 하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아직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고마운 분들을 찾아가 준비한 답례품을 전달했다. 모두 밝은 얼굴로 내 앞날을 축복해주어서 나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사랑해마지않는 우리 계원들은 어제 회식을 하면서 농담처럼 말했던 퇴임식 행사를 진짜 해버리고야 말았다. 부자 백수가 된 것을 축하하는 백수축하상과 함께 부상으로 10돈 무게의 자물쇠를 받았다. 마지막엔 부서 직원들과 함께 잊지 못할 기념사진도 남겼다. 부끄러운 마음에 어젯밤 눈물로 쓴 퇴임사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이미 충분했다. 이렇게 축복받으며 퇴사하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내 공직 평생, 서로의 소울메이트로 불리던 동기 언니가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 해주었다. 언니가 운전하는 차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며 차가 조금 더 막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순식간에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언니의 차가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툭 떨어졌다.
괴로웠다고 생각한 시간 속에도 분명 빛나는 순간들이 있어서 시간이 오래 지나 그 시간을 추억했을 때, 빛나는 순간들이 더 밝게 보이는 것 같다. 나의 빛나는 시간 속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그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 큰 행운이니, 나는 그 행운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나를 한심해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지만, 우리 모두 남이 서있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가 선택한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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